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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자 장자(莊子, Zhuangzi)는 고대 중국의 유명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도가(Daoism)의 중요한 사상가 중 한명입니다.
장자는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에 대한 강조와 인간의 인식과 경험의 한계를 강조하며, 그의 대표적인 사상 중 하나는 "꿈인지, 나는 나비인지, 나비인지 나는 꿈인지"라는 문장입니다. 이는 인간이 꿈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이, 삶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도(道)
또한, 장자는 "도"의 개념을 강조하며, 인간은 "도"를 따라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무위(無爲)
장자는 "무위(無爲)"라는 개념을 강조하며, 삶에서 중요한 것은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인간은 삶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인간의 삶에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장자의 철학은 도가 철학의 기초를 형성하였으며, 현대적인 생각과 많은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장자의 철학에서는 현실과 비현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따라 가상현실에 대해서도 그것이 현실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인식의 일부로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장자는 현실과 비현실, 인식과 경험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주장하며, 인간은 이러한 경계를 뛰어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가상현실이 현실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과 인식의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인간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인정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상현실이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장자의 철학은 그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을 현실에서 떨어뜨려서 인간의 삶을 제한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라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자의 관점에서 가상현실은 인간의 경험과 인식의 일부로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제한하거나 약화시키는 것이라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이연도 교수의 ‘장자철학의 관점에서 본 가상현실’ 논문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가상현실(VR)과 ‘장자(莊子)’
가상현실(VR)과 관련한 철학적 논의를 하는데 있어 동양철학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은 ‘장자’이다. 이야기[寓話] 속에 철학적 메시지를 담아낸 ‘장자’의 구성도 그렇지만, 기술문명에 대한 장자철학의 비판적 입장, 가령 ‘기계에 대한 경계의 마음[機心]’ 등을 떠올리면 이 문제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전개하는 데 있어 ‘장자’만큼 적합한 텍스트가 있을 수 없다. 모든 현상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함께 존재하듯이 여러 우화로 이루어진 ‘장자’의 특성상 가상현실과 관련한 논의에 있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과학기술에 대한 장자의 기본적인 시각이 비판적이라 하더라도, ‘장자’ 자체엔 가상현실에 대한 긍정적 해석을 가능케 하는 여러 우화들도 등장한다.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나비의 꿈’은 ‘가상현실’의 은유를 설명하는 소재로 자주 인용되고 있으며, 실제 이를 매개로 한 영화나 작품 등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장자철학의 중요한 철학적 개념중의 하나가 ‘변화[化]’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가상과 실재의 변주라는 측면에서 ‘장자’가 가상현실의 논의에 있어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자, 「소유유」의 첫 문장엔 유명한 붕새의 얘기가 나온다.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다. 그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곤의 크기는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곤이 변해서 새가 되는데 그 새의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새의 등 역시 넓이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붕새가 날아오르면 날개는 하늘을 덮은 구름과 같다. 붕새는 태풍이 바다 위에 불어야 남쪽 바다로 옮겨갈 수 있다. 남쪽 바다란 천지이다. 기이한 일들이 기록된 제해(齊諧)에는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갈 때에는 물을 쳐서 삼천리나 튀게 하고, 빙빙 돌며 회오리바람을 타고 구만 리나 올라가며, 6개월을 날고서야 쉬게 된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서 장자가 제시하는 대붕은 사실의 세계, 경험 세계를 벗어난 이상 세계를 지향하는 상징이다. 장자는 이어지는 문장에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자연의 변화에 따르며 무궁한 경지에서 노닌다면, 그런 사람에게 무슨 외부의 조건이나 지원 따위가 필요하겠는가?”15)라고 말하는데, 이 문장은 장자가 지향하는 자유로운 삶을 상징한다.
대붕은 인간 문명의 속박, 지식과 편견에서 벗어난 절대자유의 상징으로 동시에 ‘변화’를 뜻하는 은유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존재가 소멸하고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 이것이 변화이다. ‘화(化)’ 자는 새로운 존재의 출현, 기존 존재를 초월한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의미하는 글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장자가 곤이라는 물고기가 붕새로 변하는 것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라 보지 않고, 실제론 이 둘이 같 다고 본다는 점이다.
방이지는 이를 '주역', 「건괘」편의 ‘잠룡(潛龍)’과 ‘비룡 (飛龍)’의 예로 설명하는데, 건괘의 여섯 양효(陽爻)에서
첫째 효는 물속에 있는 잠룡을 의미하며, 다섯 번째 효는 하늘을 나는 비룡을 상징한다. 물 속에 있던 용이 하늘을 나는 용이 되는 셈이니, 여기에서 핵심 단어는 ‘용(龍)’ 으로 ‘잠(潛)’과 ‘비(飛)’는 그에 부수되는 단어인 셈이다. 「소요유」의 ‘곤’과 ‘붕’ 역시 서로 다른 존재라기보다는 연속적인 존재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장자에게 있어 세계의 본질적인 존재 방식은 ‘변화’인데, 여기서 변화는 일시적이라기보다 ‘항상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변화’가 지닌 또 하나의 특징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여기에서 발생하는 변화가 대상의 본질적인 규정성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양태의 변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장자가 변화를 강조하는 문맥에서 본질상의 변화를 의미하는 ‘변(變)’을 사용하지 않고 양태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화(化)’를 선호한다는 데서 확인된다.
이를 가상현실에 적용해 보면, 현실의 나와 가상세계의 나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이론이 된다. 비록 현실의 자아와 가상세계의 자아는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둘은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며 마땅히 연속적인 존재여야 한다.
앞서 얘기한대로 가상현실의 존재가 정체성 문제를 갖는 것은 현실세계의 존재와 완전히 분리된 채로, 동일한 존재여야 마땅한 두 존재가 서로 연속되어 있다기보다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장자는 곤(鯤)·붕(鵬)의 이야기를 통해 하늘과 물의 존재가 서로 같다는 사실을 얘기하였는데, 서로 다른 모습을 한 존재들이 사실은 동일하다는 이야기는 ‘장자’, 「제물론」에서 훨씬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음은 익히 잘 알고 있는 ‘나비의 꿈’ 얘기이다.
어느 날 장주(莊周)는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자유롭게 나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자연 속을 날아다녔는데,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했다. 문득 깨어 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장주가 되는 꿈을 꾸었는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반드시 무슨 구별이 있을 것이다. 이를 물화(物化)라 한다.
여기에서 ‘나비’는 인간과 사물이 서로 다른 존재가 아닌 동일한 존재의 서로 다른 모습일 뿐이라는 장자의 입장을 한 눈에 보여주는 상징이다. 가상현실을 설명하는 이야기로 흔히 변주되는 이 우화는 ‘나비’와 ‘장자’라는 현실세계의 자아와 꿈속의 자아 중에서 어떤 존재가 실재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천지자연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은 가상현실 속의 다양한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고, 꿈에서 깨어난 장주는 현실 세계의 우리를 보여준다. 여기에서도 ‘물화(物化)’라는 ‘변화’를 상징하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에 대한 해석은 연구자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물화’의 다양한 해석은 오늘날 가상현실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는 서로 그 모양은 다르지만, 도의 차원에서 보면 그 차별이 존재하지 않고 같은 것이라는 관점이다. 비판적 의미로 해석하면, 나비는 거짓 자아[假我]에 불과한 것으로, 장주라는 참 자아[眞我]가 미망(迷妄)에 빠진 상태를 의미한다. 가상현실을 일종의 ‘중독’현상으로 보는 시선은 바로 이런 부정적인 시선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나비의 꿈’ 우화는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장자에서 ‘꿈’으로 표현되었던 비실재적 자아의 모습은 이제 인공지능 기술과 가상현실을 통해 우리들 신체가 감각할 수 있는 구체적인 존재로 그 모습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오늘날 가상세계는 현실의 물리적 공간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으며, 그 범위와 참여대상 역시 광범위하게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우리는 가상현실 공간에서 나비처럼 유영하며, 현실 세계보다 오히려 디지털세계 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가상현실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그 세계가 현실 세계의 모습과 닮아있으면 있을수록, 그 세계를 우리의 실재로 받아들을 수 있는가의 문제와 연결된다. 놀라운 현실성을 보여주는 가상현실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인간 존재와 본성에 관한 이러한 질문은 더욱 구체적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장자철학은 우리에게 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장자’, 「제물론」의 주제는 인간의 인식이 갖는 한계이다. 우리의 인식기반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과 인식 대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 사실을 빨리 깨닫고 벗어나야만 진정한 자유에 이를 수 있다.
가상현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감각에 기반한 기술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알고리즘 역시 인간의 인식기반에 기초해 있다. 제런 레니어는 그의 최근 저서에서 로봇이나 클라우드 알고리즘의 모든 정보는 결국 사람에게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가령 자동번역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자세히 살펴보면 살아있는 실제 사람들이 매일 실생활에서 내놓는 ‘수백만’개의 번역문을 알고리즘이 수집하여 예시로 삼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얼핏 보면 ‘자족적(自足的)’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숨은 인간의 노동에서 비롯된 가치를 재포장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알고리즘을 마치 살아있는 독자적 생명체로 믿는 생각에서 벗어나 그저 사람들이 이용하는 도구로 간주하는 ‘눈 밝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은 자체적으로 생명력을 갖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인간이 제공하는 데이터와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메카니즘에 불과하다. 인간이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이상 알고리즘은 그 스스로 작동하기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어떤 사실이 실제로는 인간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오류일 경우가 많은 것처럼,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인간의 생각 또한 섣부른 판단과 선입견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감각에 기반한 인식체계의 한계는 인공지능 기술의 내밀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고, 가상현실의 유혹은 여간한 노력 없이는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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